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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 더 머니는 1973년 일어난 게티 가문의 비극적인 사연을 각색한 영화다. 존 폴 게티 3세가 로마에서 마피아들에게 잡히게 되자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게 되고 그의 할아버지는 몸값 지불을 거부하면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영화 올더머니
돈은 많지만 손자의 몸값은 줄수없는 폴게티 회장- 영화 올더머니 포스터

 

올 더 머니 스토리 전개 

영화 올 더 머니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기네스 북에도 오른 폴게티 회장의 손자 사건을 다룬다. 

 

게티 회장의 아들 폴 게티 2세는 자녀들을 둔 가장이었지만 마땅한한 직업도 없고 늘 술을 입에 달고 사는 능력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이대로 가다간 가족의 붕괴위험이 눈에 보였기에 아내 게일 해리스는 시아버지에게 일자리를 부탁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렇게 게티 회장과 만나게 되었고, 그를 만나러 간 곳에서 게티 회장은 직접 옷을  빨고 있었다. (돈을주고 세탁을 맡기는게 아닌 직접 옷관리를 했다는 점에서 게티회장의 돈을 대하는 모습을 엿볼수 있는 장면이다.) 손자가 관심을 보였던 조그만 조각상에 대해 대단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이 물건의 가치는 120만 달러는 될 수 있을 거라며 손자에게 흔쾌히 선물로 주게 된다.

그 뒤 자신의 아들 게티 2세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었고 손자 폴게티 3세를 특히 예뻐한다. 게티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 내가 하는 사업에 대를 이어 가길 바랐지만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자꾸만 술에 의존하는 아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실망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게티 3세마저 잘못된 길로 가는 순간 게티 회장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술만 먹는 남편을 보며 1971년 9월 아내 게일은 이혼을 하기로 한다. 그후 게티 회장과 그의 아들이 모인 자리에서 게일은 위자료도 재산분할도 모두 없이 그저 양육비만 달라고 말하게 되고, 게티 회장은 돈을 포기한 게일의 판단을 보면서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게티 3세가 납치를 당하게 되어 그들이 요구한 몸값 1700만 달러 때문에 게티 회장에게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그리고 회장에게 부탁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몸값을 지불하는 대신 회장은 협상 전문가를 불러 이사건을 해결해보려 한다. 플레쳐 체이스는 CIA의 출신의 최고의 협상가로 게일과 함께 폴을 찾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부호의 손주사건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이목을 끌게 되었다. 한편 납치범들은 폴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게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할아버지에게 이 사건이 진실이라는 점과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이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자신들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인 것처럼 행색을 하고선 돈을 뜯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플레처는 혹시나 이 사건이 자작극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회장에게 이사실을 알려주었다. 다들 내 주머니만 노린다며 게티 회장은 크게 실망하고 만다.

이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던 중  불에 탄 시신이 왔다는 전보를 듣게 되고 곧 바로 게일과 플레처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폴이 아니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시신을 통해 폴의 납치범들의 정보를 알아내게 되었고 특정 위치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위치를 파악하게 되자 그 길로 바로 폴을 구하기위해 출동을 하였지만 폴은 이미 마피아 조직에게 팔아넘겨졌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마피아 조직밑으로 납치범중 한명인 친콴타가 부하로 일하게 된다. 친콴타는 폴이 납치되었을때 그의 옆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그의 할아버지가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폴을 보며 동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콴타는 비록 나쁜 일을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족은 하나의 신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에 탄 시신이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플레처는 회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지만 게티는 여전히 몸값을 지불할 돈이 없다고 끝까지 돈을 지키려 든다. 그렇게 점점 플레쳐는 게티 회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기다리다 결국엔 자신의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판단한 게티 3세는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고 우연히 그가 탈출하는 모습을 본 납치범 친콴타는 못 본 척 넘어가지만 이내 마피아 조직에게 붙잡히고 만다. 자신들이 700만 달러로 몸값을 내려 요구했음에도 무시를 받자 게티 3세의 신체일부를 신문사로 보내는 잔인한 일까지 벌이게된다. 신문을 보게 된 게티 회장은 그제야 심각성을 깨닫고 몸값을 지불하게 된다. 그때가 이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지 5개월에 접어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곧장 플레처와 게일은 폴을 찾기 위해 마피아를 찾아가게 되고 무사히 도망치는 이야기로 영화는 끝이 난다.

 

사건 이후 존 폴 게티 3세의 삶

1973년 당시 16세였던 게티 3세는 이탈리아 범죄 조직 '은드란게타'에 의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렇게 5개월간 잡혀있게 되어 있다가 신체 일부가 잘리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이유로 이목을 집중하게 되어 아주 유명해졌지만  최대한 평범하고 안정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폴게티 3세는 여느 평범한 학생들처럼 대학교에도 다니게 되었고 결혼도 하여 사랑스러운 자녀도 얻게 되었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과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결국 존 폴 게티는 그 사건과 인간에게 가해진 신체적 후유증,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몸을 혹사시키며 힘들게 살게 되고  25살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간질환이 찾아와 사지가 마비되었으며 시력까지 잃게 되었다. 정신적인 고통 속에 빠져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내야 했고 어른이 된 아들을 어머니인 게일이 돌봐야만 했다. 무엇이 게티 3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을까. 할아버지일까  본인 자신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게티는 납치된 손자를 무사히 집으로 데리고 오기위해서 할아버지가 몸값을 지불하고 빨리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의 희망과 기대는 무너져내렸고 그래도 손자이고 가족인데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돈을 더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게티는 죽기전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잡아보려 애썼지만 결국은 극복하지 못한 게티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하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돈의 욕망에 눈이 먼 억만장자

 

기네스북에 세계최고부자로 등재된 석유재벌가 폴 게티의 당시 자산은 12억 달러(한화 10조 3400억 원)였고, 그가 사망할 당시 1976년 그의 자산은 60억 달러( 30조 5천억 원)가 넘었다고 한다. 돈을 셀 수 있다면 억만장자가 아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 게티 회장은 돈을 사랑했지만 그 돈으로 비난을 받았던 사람이다.

손주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필요했던 몸값을 깎아내기에 바빴으며 사람보다는 돈이 더 중요했던 지독한 사람이었다. 부자라면 사회에 기부도 하고 자선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나누려고 하는데 폴 게티 회장은 자선활동에도 인색했다고 한다. 그를 찾아가 부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돈에 대한 욕심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게티 회장은 결혼도 5번이나 했고 그의 손자는 15명이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손자가 그런 일을 당해서 흔쾌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이유는 나머지 손자들에게도 위험이 가해질까 봐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오로지 그자만 알 것이다. 

또한 게티 회장은 미술작품을 사들이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미술품이 워낙 많아서 자신의 집에 작품을 걸어둘 수 없게 되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팔리사데스에 있는 자신의 대 저택을 이용해 전시공간을 만들정도였다. 손자의 몸값은 지불할 돈은 없고 자신에게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평생을 외롭게 살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이룬 부를 다들 눈독만 들이면서 빼앗아가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던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쓰고 싶을 때만 돈을 썼고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사회에도 인색하고 가족에게마저 외면받은 그는 살아생전 존경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도 가족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임종을 지키지 않았던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사람의 일생을 보니 인과응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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